고등학교 졸업식에 대한 나의 기억은
별거하며 지낸 지 오래된 나의 부모가
졸업식으로 오래간만에 만나는 불편한 자리였다.
그 어색한 공기가 나를 휘감고
별거하는 부모를 뒀다는 걸 들킬까 봐 전전긍긍.
꽃다발을 들고 양 부모의 환한 미소에 사진을 찍는 친구들을 보며
난 그저 피하고 싶었다.
뭐. 어릴 땐 그럴 수 있다.
생각도 경험도 부족하니까
지금은 나의 그런 부모의 이혼 경험이 내 삶의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거의 30년을 아내와 말도 하지 않고, 성인이 되어가는 아이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어느 한 곳 마음 붙일 곳 없이 그저 되는대로 살아간다.
그는 삶의 어떤 재미도 없다.
가끔 이렇게 살기보단 죽는 게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죽음을 실행할 용기도 결심도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숨만 쉬고 살아간다.
그의 부모는 서로 투닥거리면서 80년을 살아왔다.
그는 이혼을 경험한 적이 없다.
아마 내 부모도 사이가 안 좋아도 살아왔으니 나도 아내와 이렇게 사는 것이 정상이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서로를 갉아먹는다면 차라리 헤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나은 결정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는 절대 알지 못한다.
나는 안다.
이혼을 해도 얼마든지 삶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늘 부모의 이혼 경험이 나에게 긍정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니다.
창피하고, 부족하고, 숨기고 싶고, 괴로운 감정으로 장시간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만 부끄러워하고
내 삶의 긍정의 경험으로 녹여내겠다고 내가 결정했다.
나는 이혼을 생각할 때가 있다.
수틀리면 이혼하자가 아니라
지금의 남편에게, 내 결혼 생활에 집중하고 살다가
그렇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면
정중하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내 삶을 지속해야겠구나
생각한다.
적어도 두렵지는 않다.
이혼 후 긴 시간을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내 부모를 보고 배웠다.
이혼 가정이라는 이유가 늘 자기 삶의 열등감으로 작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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