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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생각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불행했던 과거는 힘이 없다.

by liogaddu 2023.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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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했던 과거

난 유년시절 이후 성인이 된 뒤에도 대략 30세까지 불행했다. 당장에 느껴지는 불행을 잊으려 단기적인 만족감에 빠져 살았다. 사람들이 마약에 빠지는 이유가 비슷하리라 확신한다.

 

불행의 근원은 아빠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생활은 잡음이 많았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지만 자기 확신이 부족했고 시야가 좁았다. 아빠는 우유부단하고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일 수 있으나 가족들에겐 무심하고 자기 처지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밖으로 돌았고 여자도 많았다. 큰 키에 호감형 외모가 한몫했으리라.

 

엄마는 우리 셋의 육아를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의 불화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 방법을 찾지 못해 소비로 이어졌다.

아빠는 갑작스레 집을 떠났다. 그가 떠나는데 정당한 이유가 된 것이 나의 존재다.

 

아빠 혈액형은 AB형, 엄마는 0형 그리고 나는 0형이다. 우성과 열성의 생물학에 의하면 내 혈액형은 나올 수 없는 조합이다. 아빠는 엄마가 밖에서 데려온 자식이라며 자신이 바람을 필수 밖에 없다며 나에겐 네 아빠가 따로 있다며 그렇게 집을 나갔다.

 

이후 5-6년 뒤에 유전자 검사를 해보고 안 사실이지만

그렇다. 난 돌연변이다. 99.999...%의 확률로 아빠 딸이다. 젠장.

 

고등학교 2학년 말. 지금의 남편을 만나 정말 신나게 놀았다. 그 당시 나를 잊을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 내 상황을 잊어버리려 연애를 했지만 남편은 정말 나를 좋아해서 연애를 했다고 한다. 

 

난 애정을 갈구했다. 문제는 이거다. 아빠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저 주변의 시선만 중요할 뿐.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없는 사람은 평균이라 규정된 시선만 고집하고 강요할 뿐이다. 그의 눈엔 늘 부족한 딸이었다. 난 아빠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가 나를 규정하는 대로 놔두었고, 그를 만족시키려 내 시간들을 보냈다. 너무 소중한 내 시간들을 그렇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보냈다.. 정말 긴 시간을..

 

난 늘 불안했고 불안정했고 미래가 없었고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죽고 싶었다가 살고 싶었다. 없는 것만 바라보며 갖고 싶어 했고 나에게 야박했고 부족하다 비난했다. 날 향한 그런 날 선 시선들이 나를 얼마나 죽이고 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

 

나를 살린 위대한 사랑

나를 살린 건 세 명의 사랑이다.

 

첫째는 엄마. 엄마는 나를 끝까지 봐주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미안해했다. 변함없이 사랑을 주셨다. 그 사랑으로 난 지금 내 아이들을 키운다.

 

둘째는 은영이. 고1 때 만난 내 절친이다. 푸근한 인상에 첫 만남부터 난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됐다. 은영이 역시 넘치는 사랑으로 날 믿어주고 받아줬고, 우린 싸워가며 서로에게 맞춰갔고 보듬어갔다. 난 달라지기 시작했다. 

 

셋째는 남편. 고등시절 연인이었다가 이후 긴 시간을 헤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29살에 다시 만났다. 우연히. 아직도 기억나는 건 그렇게 오래 떨어져 지냈는데 눈앞에 있는 그가 너무나 익숙하고 포근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기둥을 잡고 있던 그의 팔뚝에 선명하게 보이던 힘줄이 어찌나 섹시하던지..

우린 다시 연인이 되었지만 내 정신은 상처받은 고2때와 똑같았다. 남편을 괴롭히며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의 되풀이. 그러다 기적에 가깝게 내가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보듬고 받아주고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프러포즈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내가 사는 이유 그리고 목표

 

지금은 마흔이 되었고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삶의 목표가 생겼다. 드디어!

 

그래서 운동을 하게 되고

그래서 더 잘 챙겨 먹으려 하고

그래서 책을 읽고

그래서 내 24시간을 제대로 쓰려고 한다.

 

이제야 나를 돌아보고 인정하고 같이 살기로 한 것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두려워지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눈을 부릅뜬다.

괜찮아 경희야 세상이 변했어. 늦었다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어. 내가 어떻게 앞으로 살아갈지가 더 중요해.

 

<레슨 인 케미스트리>라는 책을 읽다가 엉엉 울었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잘 울지 않는데 어쩐 일인지 눈물이 줄줄 났다.

 

서로 결핍이 있는 주인공들이 사랑을 하며 치유를 하고 그렇게 인생을 설계하던 찰나에

남자 주인공이 죽었다. 그 대목에서 난 울기 시작했다.

 

지금 내 곁에 남편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 일인가.

이제야 사랑이 뭔지 알고 전력을 다해 사랑하는데  그 상대가 세상에 없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너무나 와닿았기 때문에

 

난 더 이상 내게 없는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 20년 동안 겪어봐서 안다.

지금의 나로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해하며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지금의 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남편, 사랑스러운 두 아이, 시원한 가을바람, 책 속의 많은 지식과 지혜, 씁쓰름한 커피, 얼굴의 내 주름들, 삐죽삐죽 흰머리, 미래에 만날 멋진 나

 

이 모든 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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