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주일을 다이내믹하게 보냈다.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방학을 해서
일주일을 나와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방학이 오기 전부터 마인드 컨트롤하며 기왕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재미있게 보내야지~ 다짐했지만..
첫날부터 남편과 사소한 일로 싸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한껏 기합이 들어가 긴장된 상태라
예민해졌고, 그래서 별 것 아닌 일을 큰 자극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이후 기합을 빼고 아이와 함께 스케줄을 짜고 이행하며 단순하게 보냈다.
그렇게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
주말에 센 감기에 하루 그리고 다음날 반을 누워 앓다 다시 부활했다.
두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첫째.
내가 하는 일을 남이 알아줄 거란 기대와 의식이 나를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꺼이 온갖 수고를 해가며 육아를 한다고 했지만 그 안을 더 들어가 보면
내 수고와 노력을 남편이 알아주길 바랐다.
그런데 남편이 알아주는 것이 왜 나한테 중요한가를 더 따져보면
그건 기꺼이 하는 게 아니라 남을 의식한 행동일 뿐이었다.
행동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남'이었다.
남편이 알아주면 난 잘한 거고
남편이 몰라주면 난 억울해하는 게 맞는 건가?
내가 내 아이들의 엄마이기 때문에 기꺼이 성심을 다해 육아를 하는 것은
남편에게 인정받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다.
그 가치를 알아주면 고마운 일이고
몰라준다 해도 서운하고 억울해할 이유가 없다.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 생각했었지만
남의 '시선'에 내 행동을 고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웠다.
반성한다.
둘째.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몸은 춥고 덥고를 반복하며 식은땀 흘리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약발이 빨리 들기를 바라며
누워있기만 하던 때에
하루를 살며
할 것이 너무 많다며 불평하면서
고단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의지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복'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SNS를 보면서
엄청난 사람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육아를 하는 지금을 한탄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안 것이다.
엄마라는 위대한 직업을 갖게 해 준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동시에 남들 8시간에 끝낼 일을 난 3시간에 끝내야 하므로
엄청난 몰입과 시간의 효율을 이끌어 내야 하는 능력을 능숙하게 다뤄야 하는
필연적인 상황에 처한 것에 감사한다.
이 두 가지 큰 깨달음 역시
둘째 아이와 보낸 일주일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우쭐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더 배우고 깨치고 싶다는 호기심과 열망이 있음에 셀프 칭찬한다.
순간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깨닫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엔 더 나은 내가 되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 나를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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