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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1 내 아들에게 절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를 집에 초대했다.
그들의 관계가 보였다.
아들의 친구는 아들을 한수 아래로 보고 대응했다.
아들은 그런 걸 알리 없다.
몸싸움을 하면 아들은 밑에 깔렸다.
맘에 드는 장난감을 먼저 집어도 친구가 가져가면 저항하지 않았다.
친구가 동생을 놀려도 아들은 동생보단 친구가 노는 게 중요했는지 더 먼저 놀리기 시작했다.
그런 관계를 속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으며 지켜봤다.
친구가 돌아가고도 나는 아들에게 동생을 그런식으로 놀리면 안 된다는 훈계 이외엔 하지 않았다.
아들의 기질은 나를 닮았다.
순한기질.
아직도 생각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아서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어도 나는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 먼저 사과를 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친구는 나를 한수 아래로 보고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었다.
이런 기억이 있기에 더 아들과 친구의 관계를 바라보고만 있기가 불편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내 과거다.
아들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어른의 시선으로 그들의 관계를 규정짓지 않는다.
아들은 스스로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
나는 아들의 성장을 멀리서 지켜봐야 한다.
아들 스스로가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행동해야겠다고 느껴야 한다.
그전까진 나는 절대 먼저 행동해선 안된다.
부모가 먼저 나서서 자녀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순간
그 자녀는 바보가 된다.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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