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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 사용 설명서

'외도' 사용 설명서 3 -내가 본 것은 '환상'이었다!

by liogaddu 2025.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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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은 18년 전 남편을 여의셨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계신다.

아버님 기일이 되면 정성껏 제사상을 준비하시고

제사를 지내는 자식들 뒤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신다.

어머님을 통해서 들은 아버님은 굉장한 사랑꾼이셨다.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가족들을 위한 삶을 사셨다.

 

평생 바람을 피우던 아빠 밑에서 자란 나는 

그런 남자도 있다는 사실에 굉장한 쇼크를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 여자만 사랑하며 살 수 있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며

그 남자 아들인 지금의 내 남편도 그렇게 살 꺼라 확신했다.

내 환상이 투입되는 시점이 바로 '여기'다.

 

남편의 잠바를 입고 일을 하는 여직원의 사진을 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남편에게 씌워 놓았던 내 환상이 깨짐으로 느낀 '좌절감'이 있었다.

남편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환상이라는 안경을 쓰고 남편을 보고 있었다.

 

 

내가 본 사진이 남편의 외도를 의미하는지 아닌지 그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엔 그 의미를 알고 싶어서 남편을 캐물었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더 나를 빡치게 하는 말 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변명인지 똥인지 분간이 안 되는 소음들.

 

이 사건으로 내가 느끼는 내 감정, 감정이 말해주는 내 상황, 이 상황을 딛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

오로지 이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날것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날 키우고 있다.

오히려 지나치게 살아생전의 아버님 같은 사랑을 나한테도 해달라고

남편에게 요구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환상 같은 사랑이 기준이 되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본다.

남편인 너는 그냥 평범한 남자다.

때로는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 가고 마음도 갈지 모른다.

가는 대로 행동이 따라간다면 부부사이의 약속을 깨는 일이니

그땐 헤어지는 거다.

함께 한 시간이 긴 만큼 비례해서 헤어짐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환상을 걷어내고 보는 현실에 오히려 덤덤해지고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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