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수입이 없다.
남편의 경제력으로 아이들과 생활한다.
이사를 했고, 매달 내야 하는 이자가 만만치 않아 여러 가지로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뭔가 엄청난 걸 사는 것도 아닌데 매달 나오는 카드값의 총합으로
남편은 아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은 발끈하거나 움츠려들 거나 숨기거나 세 가지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문 앞에 배달된 봉투를 뜯고 봉투를 작게 구겨서 몰래 재활용 봉투에 넣었다.
왜 난 아이들 칫솔을 뜯는데 살그머니 조용히 몰래 그러고 있지?
불편하다. 이 감정.
아이들 등원을 마치고 책상에 우두커니 앉았다.
갑자기 울컥한다. 장문의 톡을 남편에게 보낸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끼는 게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소비들이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소비를 할 때조차 당신 눈치를 봐야 하는지 너무 불편하다고
내 감정을 터뜨렸다.
곧이어 미안하단 문자와 전화가 왔지만
알겠다는 말 이외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일단 끊고
내 안에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넌 눈치를 봐? 눈치를 볼 때 어떤 감정이 들어?
눈치를 볼 때 난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확인받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버럭 했지만 작아지는 기분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랬구나 경희야
넌 잘못한 게 아니야. 그렇지만 이 상황인 건 맞아. 상황이 너 인건 아니야. 슬픔을 이해하지만 너무 슬픔만이 다 인 것처럼 몰입하지는 마.
이 슬픔을 제대로 느껴봐 그리고 어떻게 쓸 건지 결정해.
슬픔 자체로 소비하지 말고 내가 해야 할 행동으로 연결해.
인정하기로 했다.
이리저리 회피하지 않기로 하고 내가 느끼는 약점을 직시했다.
약점을 숨기기 바빴을 땐 스치는 작은 자극에도 발끈했었다.
그래 지금은 수입이 없어.
그런데 제대로 벌고 수입을 얻고 당당해지는 길을 가고 있어로
방향을 정하니
머리가 맑아지고 두 달간 없던 생리가 터졌다!!
내 몸이 먼저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와!
불편한 감정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힌다면
한 번쯤은 제대로 들여다보자.
겁먹지 않아도 돼.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를 나 전체인 양 크게 보고 두려워하는 건 아닌지 잘 살펴보자.
불편한 감정을 아이에게 남편에게 투사해서 키우지 말고
한번 제대로 들여다보자.
그러면 생각보다 작아서
생각보다 별거 아님과 동시에
해결할 길이 보여서
신나 진다.
지금은 수입이 없지만
그건 지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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