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나는 내 아이를 싫어한다 = 나는 내가 싫다

by liogaddu 2023. 10. 6.
반응형

나의 단점을 나의 아이가 빼닮은 이유

우리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미숙함이 펼치는 복잡한 연극을 대극장 1등석에 앉아 관람하듯 목격할 수 있다.

아이들이 우리 내면에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면 우리는 자신이 제어가 안 되는 것처럼 느껴져 금세 짜증과 불안, 분노를 표출한다.

 

 물론 아이들이 우리를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단지 우리가 어렸을 때 풀지 않은 채 묻어둔 감정적인 문제들을

일깨우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이 약하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 탓으로 돌린다.

이때 '진짜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무의식'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우리는 가족으로부터 에고에 충실한 역할과 인생 대본만이 아니라 정서적 특징도 물려받는다. 모든 역할과 인생대본에는 저마다 독특한 정서적 특징이 새겨져 있다. 우리가 갓 태어났을 때는 에고의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상태다. 이 말인즉슨 아직 방어막이 형성되지 않아 주변의 정서적 에너지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부모와 정서적으로 활발하게 교감하며 부모의 정서적 특징을 흡수하는 동안, 그 에너지가 서서히 우리의 정서적 특징으로 각인된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흡수한 그 정서적 에너지를 인생의 어느 시점에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각인을 우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게 된다.

 

외부환경에 민감한 이유

 우리가 외부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내면의 고요 속으로 들어가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과 즐거움의 뿌리를 찾는 법을 부모나 사회로부터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존중하며 받아들이고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 외부 자극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갈수록 민감해진다. 이것이 또다시 극적인 사건들에 휘말리는 원인이 된다.

 

 어두운 감정을 억누르면서 자라면 그 감정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림자를 만든다. 우리의 의식에서 떨어져나간 이 감정들은 언제든 낌새만 보이면 활약할 준비를 하고 잠복해 있다. 많은 사람이 느닷없이 발끈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의 어두운 그림자로 인해 이렇듯 감정이 일어나면, 우리는 우리 안에 이런 감정을 일으킨 상대를 원망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애초에 우리 안에 그런 그림자만 없었다면 누구도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는 이 감정들을 남에게 쏟아냄으로써 자기 안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불편을 덜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악당으로 만들려한다. 우리의 억눌린 감정과 마주하기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서 그런 감정을 발견할 때마다 혐오감이 일고, 그것이 반발로 이어져 그 사람을 괴롭히고, 어떤 경우 죽이기까지 한다.

 

 

아이가 당한 사건에 잘못된 부모의 해석

아이가 10대가 되면 왜 부모와 자주 충돌할까?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종차별이나 증오범죄는 왜 일어날까? 이런 일은 모두 우리가 우리 안의 그림자, 즉 내면의 상처를 외면할 때 벌어진다.

 예컨대 우리가 어렸을 때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항 경험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스스로가 그 고통을 해소하지 않는 한 나중에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가 괴롭힘을 당해 고통스러워하면, 그 모습을 보는 게 힘들다고 생각할 뿐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차분하게 감정을 다스릴 기회를 주는 대신 절대 나약한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잘못된 믿을을 심어주기 쉽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강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실제로 강하다고 느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으스대는 법을 배운다. 힘과 통제를 둘러싼 부모의 여러 가지 문제가 미묘한 방식으로 무수히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인생이 내 편이 아닌 이유

우리는 인간관계와 외부환경에 문제가 생기면 인생이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인생이 우리에게 적대적이라거나 우리를 골탕 먹인다고 생각하며 희생자의 인생대본을 받아들인다. 인생은 중립적일 뿐인데도 인생이 늘 내게만 가혹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 외부에 우리의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킨 사람은 그냥 사람일 뿐이고, 상황은 그저 상황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 사람을 적대시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내면의 그림자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이나 상황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주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이제라도 외부에서 자극을 받아 발끈할 때면 '감정이 동요하는 것은 내 안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다시 말하면 감정적으로 발끈할 때는 밖을 보는게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의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세상에 적은 없으며 오로지 우리의 내적 성장을 이끄는 안내자만 있음을 알아차리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인생의 갖은 고난들도 정서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로 바뀐다. 인생에서 사람이든 상황이든 어떤 장애물을 만나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적으로 보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자. 

 

 '나는 지금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까?'

 

  그러면 주변환경에 대한 불만이 사실은 내 안의 불만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깨닫고 나면 장애물 같던 사람이나 상황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친절하게도 내 안의 불만을 거울처럼 비춰주니 말이다. 그러다 보면 나와 다른 사람 사이를 갈라놓던 균열도 사라진다. 그 사람이 나와 분리된 존재이긴 하지만 내 안의 내면상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나와 별개의 다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적 교훈을 우리 삷 속으로 받아들이면, 이제 우리 안의 본질적인 존재로부터 일상의 태도가 달라지길 원하게 된다.

 

부모가 되는 것이 인생 최고의 여정인 이유

 부모가 되는 것보다 정서적으로 더 예민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여정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감정적인 반응을 유발할 때마다 우리는 정신적 성장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가 된다는 건 우리의 정서적 그림자에 처음으로 환한 조명을 비춤으로써 우리 내면에 민감한 반응을 다스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부모의 여정은 부모와 아이 모두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매 순간 정신적 교감이 이루어지면서 부모와 아이는 각자 고유한 영적 길 위에서 손을 맞잡았지만 여전히 각자 춤추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각자의 삶에 창조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