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시련을 겪을 때 그 경험에 격차라는 프레임을 씌우면, 즉 당신이 그 경험을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해석하면, 인생의 사건들은 당신에게 그저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런 경험의 산물일 뿐이고, 일어난 사건들에 휩쓸리는 무력한 피해자다. 어떤 경험이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비교를 하게 되며 경험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다.
모든 경험을 개인적 성장의 계기로 전환할 때 비로소 유익이 생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경험을 유익한 경험이라는 프레임으로 설정하라. 경험에서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교훈을 얻어라. 그러면 더 나빠지는 게 아니라 더 나아진다. 끔찍한 시련을 겪을 때 그 경험을 유익한 경험이라는 프레임으로 설정하면, 인생의 사건들은 당신에게 유리하게 펼쳐진다. 당신은 더는 경험의 산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경험이 의식적인 선택의 산물이 되는 것이다.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당신 손에 달렸다.
당신이 경험의 주인이지, 경험이 당신의 주인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고 해서 그 경험들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마라. 오히려 고통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 가치를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 또한 고통스러운 감사함을 나타내라. 과거의 경험에서 유익을 얻으면, 미래의 나는 경험 하나하나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한다.
과거의 경험에서 유익을 찾는다면, 예전보다 아는 게 더 많아진다. 더욱 탁월한 관점이 생기며, 원대한 목표를 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공감 능력도 향상된다. 미래의 나는 과거 덕분에 더 탄탄한 기반을 갖춘다.
-퓨처 셀프 중-
과거는 의미다.
과거는 스토리다.
그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미래의 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민을 준비해서 독일로 떠났다.
남편과 나는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나 보다 합리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독일로 가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생각대로 진행되진 않았고
힘들었고 지쳐서 풀이 죽어 돌아왔다.
난 지난 낭비된 시간들을 빠르게 만회하려고 이미 나름 성공해 자신의 사업을 일구고 있는 사촌오빠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빠 옆에서 사업을 배우며 빨리 커야지
라며 부풀어 있었다.
직장 환경은 열정 결핍을 부르기 쉬웠다.
그 뒷배경에는 고압적인 상명하복의 직장 문화가 존재했다.
끝없이 나의 가치를 증명하며 보잘것없는 보상을 구걸해야 했다.
그 적은 사람들 사이엔 사내 정치가 있었고
업무 능력도 떨어지고 성격도 나쁜 본부장은 나와 사장 사이를 이간질 했다.
월요일이 두렵고 금요일만 기다려졌다.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부족할수록 기운이 꺾였다.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에 심각한 독이 되었다.
그 독은 삶과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된 듯한 자괴감을 안겼다.
결국 난 이미 나이가 꽉~~ 찬 회사에 해달라는 건 많은데 일은 제대로 못하는 그런 직원으로 인식된 채
1년째 되는 날
모진 소리를 들으며 퇴사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2살 리오에게 기대 펑펑 울었다.
내가 울자 리오는 더 빽빽 울었다.
그 모진 소리들을 모두 다 진실로 받아들였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
아마 쭈그러든 채 쭈글이로 나이 들어가고 있었겠지..
그 당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류한 일이다.
잘한 부분은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칭찬했고
잘못한 부분은 내가 할 수 있는데 안 한 건지 아예 못하는 건지 다시 세세하게 나눠보았다.
할 수 있는데 안한 부분은 이유가 뭔지, 아예 못하는 부분은 할 의지가 있는지 놔두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은지 스스로 객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그 1년의 회사생활 덕분에
블로그에 쓸 이야기가 넘쳐난다.
회사 생활,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즘, 인간관계 중 권력관계, 제왕적 리더십, 메타인지가 어려운 인간상.. 등등
남이 나를 규정하게 놔두지 마라.
나만이 나를 규정할 수 있다.
나 역시도 내 과거에 사로잡혀 나를 규정하게 놔두지 마라.
나는 내 장점을 강화해 살아간다.
과거는 의미다.
과거는 스토리다.
그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미래의 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